- 금융위 시행령 개정안에 학부모·교사 “앞뒤 안 맞는다”
금융위원회가 만 12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가족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소년의 게임 아이템 과금과 웹툰·콘텐츠 자동결제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온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해법이 오히려 신용 결제 수단을 더 이른 나이에 열어주는 방식이어서 “정책 논리가 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 22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안을 공식 발표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부모가 신청할 경우 만 12세 이상 자녀에게 가족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다음 날인 23일부터 3월 4일까지 약 40일간 입법예고 및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가 내세운 명분은 분명하다. 부모 카드 대여, 이른바 ‘엄카’라는 불법 관행을 제도권으로 정비하고, 비대면·디지털 결제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사용 내역과 한도를 관리할 수 있는 가족카드가 더 안전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번 제도는 국회의원 발의 법안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공청회나 학부모·교사·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식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다.
형식적 입법예고만으로 사회적 논쟁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 발표 이후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문제 진단과 처방의 불일치다.
그동안 청소년 관련 민원과 교육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게임 아이템 과금, 웹툰·스트리밍 자동결제, 소액결제 중독 등 ‘결제 문턱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를 문제로 지적해 놓고, 해결책으로 신용 결제 수단을 만 12세부터 공식 허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 게임·웹툰 결제가 문제라고 하면서 신용카드를 쥐여주는 건 불을 끄겠다며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직불카드나 월 용돈 한도 관리부터 정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 역시 “금융교육은 여전히 선택 과목 수준인데 결제 수단부터 먼저 여는 건 순서가 거꾸로”라며 “아이들이 돈의 가치보다 결제 버튼을 먼저 배우게 될까 걱정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 많은 현실에서 ‘부모 통제’를 전제로 한 제도 설계는 사전 통제보다 사후 확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러한 우려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OECD 주요 국가들은 신용카드 계약을 원칙적으로 18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성년자에게 허용되는 것은 직불카드나 선불카드, 또는 부모 카드의 추가 사용자 형태가 대부분이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12~13세 청소년용 카드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는 계좌 잔액 범위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직불카드에 가깝다. 신용 결제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OECD 금융소비자보호 원칙 또한 청소년 금융 접근을 확대할 경우 의무적 금융교육, 단계적 접근, 강력한 보호 장치를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반면 이번 개편안에는 카드 발급 기준 완화만 있을 뿐, 금융교육 의무화나 결제 업종·유형 제한 같은 보호 장치는 부모의 자율 관리에 맡겨졌다.
결국 이번 정책은 단순한 편의 조치가 아니라 청소년을 언제부터 ‘신용 소비자’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다.
게임 아이템과 웹툰 과금이 문제라고 진단해 놓고, 그 해법으로 신용카드를 더 이른 나이에 허용하는 방식은 정책 목표와 수단이 충돌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회 논의와 공개 공론화 과정 없이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되는 만큼,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 제도가 청소년 금융교육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조기 신용화 사회로 가는 신호탄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결제 문턱을 낮춘 선택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가능성 역시 함께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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