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논란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습관처럼 ‘얼굴’을 먼저 찾는다. 그 얼굴과 관련된 숫자, 이름, 사과문, 그리고 도덕적 판결. 최근 차은우 세금 추징 보도 역시 순식간에 “탈세냐 아니냐”의 도덕극으로 재편됐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개인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비슷해서다.
쟁점은 “세금을 얼마 덜 냈느냐”가 아니다. 돈이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 누가 그 경로를 설계했고 최종 판단을 내렸는지 즉, 세금의 의사결정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얼굴을 처벌하는 순간 구조는 살아남고, 구조가 살아남는 한 다음 얼굴은 교체될 뿐이다.
대중은 세금을 액수로 판단한다. 하지만 세금의 본체는 액수가 아니라 돈의 동선이다. 연예인의 소득은 출연료·광고료·행사비·해외수익·로열티·초상권 등으로 쪼개지고, 이 조각들은 계약서와 정산 구조, 비용 처리 방식, 법인화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과세 결과를 만든다.
여기서 세금은 ‘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가 된다. '개인 소득인가, 법인 매출인가.' '실체 있는 용역인가, 형식적 우회인가.' '수익의 귀속은 어디인가.' 논란의 언어가 도덕에서 구조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 키워드는 경제학이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연예인은 수익의 ‘원청’이지만, 수익 창출과 정산·세무·법인 설계의 상당 부분은 기획사·회계·세무 대리인·법무 자문 등 ‘대리인’에게 위임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는 대리인이 더 많이 갖고, 판단도 대리인이 더 자주 내린다. 그런데 리스크가 터질 때 책임은 어디로 향하는가. 대리인은 익명이고 원청은 실명이다. 운전대는 여러 손이 잡았을지 몰라도, 사고가 나면 가장 유명한 탑승자가 끌려 나온다. 이 장면이 반복될수록 구조는 살아남고 얼굴만 바뀐다.
국내에서 유사한 추징 논란이 잇달아 보도되는 것도 그래서 개별 사건이라기보다 '산업의 관성'으로 읽어야 한다.
사건마다 디테일은 달라도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 “세법 해석 차이”,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 “확정 전 단계다.”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패턴은 구조다. 특히 1인 법인·용역 계약·소득 귀속·비용 처리의 경계선은 엔터 산업이 관행으로 버텨온 회색지대다. 관행은 오래되면 법처럼 굳어지지만, 규제기관이 어느 날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관행은 단숨에 리스크가 된다.
그 충돌을 개인의 사과문만으로 덮는 순간, 사회는 잠깐 통쾌할지 모르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구조가 주(主)인데 개인이 책임을 지고 독박을 쓴다.
해외에서도 스타 산업의 세금 논란은 반복된다. 특히 스포츠·엔터처럼 ‘이미지로 돈을 버는 산업’에서 세금은 예외가 아니라 상수다.
초상권·로열티·해외 수익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수익은 개인 노동의 대가인가, 법인의 사업 소득인가.” “어느 과세권에 귀속되는가.” 유명인 세금 논란의 공통 분모는 도덕만이 아니라 귀속과 실질이다.
그래서 성숙한 산업은 개인의 성실성에 기대지 않는다. 애초에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전제로 통제와 검증을 표준화한다. 얼굴을 ‘교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춘다.
여기서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납세는 개인의 선의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성실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개인에게만 “공인(혹은 공인에 가까운 개인)은 더 엄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회는, 산업이 그 요구에 무임승차하도록 만든다. “정직하라”는 명령이 반복될수록, 정직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장치 즉, '거버넌스'가 오히려 필요해진다. 개인의 미덕이 산업의 안전장치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반복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세무 의사결정의 책임선을 문서로 남겨야 한다. 누가 어떤 구조를 제안했고 어떤 리스크 평가를 했는지 기록이 있어야, 위기 때 “몰랐다 · 알았다”의 감정 싸움을 넘어 운전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특수관계자(가족) 거래는 사생활이 아니라 이해상충으로 분리 관리해야 한다. 가족이 돈의 동선에 등장하는 순간 사회는 사안을 공정성 프레임으로 번역한다. 이 번역을 되돌리는 길은 감정 호소가 아니라 분리관리·심사·기록이다.
셋째, 연 1회라도 외부 점검을 표준화해야 한다. 거창한 컴플라이언스가 아니라도 '관행'을 '표준'으로 끌어올리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넷째, 위기 시에는 사과문보다 쟁점·단계·원칙을 담은 ‘조세 로드맵’이 먼저 나와야 한다. 시장과 여론이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잘못 그 자체보다 ‘불확실성’과 ‘공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것은 “그는 착한가”가 아니다. '이 산업은 돈을 벌 만큼 책임을 다룰 준비가 되었는가'다.
세금은 언젠가 확정된다. 그러나 신뢰는 확정되기 전에 무너진다. 그래서 이번 논란에서 봐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다음 논란은 다른 얼굴을 통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우리는 또 한 번, 가장 쉬운 결론으로 달려갈지 모른다.
얼굴을 탓하는 것은 쉽다. 구조를 고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반복을 끝내고 싶다면, 이제는 어려운 쪽을 선택해야 한다.
글=이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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