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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진행 중인데, 축제는 보이지 않는다

  • 박상현 기자
  • 입력 2026.02.1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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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유승은이 묘기를 펼치고 있다. (리비뇨=연합뉴스)

 

유승은이 공중에서 보드를 비틀어 착지하던 순간, 전광판은 ‘동메달’을 찍었다. 18살, 첫 올림픽, 스노보드 빅에어 결선에서 171.00점으로 한국에 두 번째 메달을 안겼다. 


앞서 김상겸은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0.19초 차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 ‘첫 메달’의 포문을 열었다. 


선수들은 이렇게 제 몫을 해내고 있는데, 정작 한국 사회의 응원은 예년만 못하다. “올림픽인데 분위기 왜 이래”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갈 정도로, 체감 온도가 낮다. 


개회식 시청률이 1.8%에 머물렀다는 보도는, 관심이 ‘출발선’에서부터 미끄러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냉기는 ‘관심이 줄었다’기보다, 관심이 붙을 통로가 좁아진 탓에 가깝다.


그 동안의 분석은 대체로 한 줄로 정리된다. 중계가 한 곳에 묶이면서(혹은 한 채널 중심으로 좁아지면서) 국민 시청권이 흔들렸다는 진단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이제 제도 논의로까지 번지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이 ‘시청권 제한’에 유감을 표하며 방송사 간 올림픽 중계권 협상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이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이 문제를 ‘중계가 어디로 갔느냐’로만 끝내면, 다음 대회에서도 같은 논쟁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번 올림픽이 유독 조용한 건 ‘누구나 쉽게 시청할 수 있는 문’이 좁아진 데다, 그 문 앞에서 사람을 불러모으는 장치까지 함께 약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응원’이 반쯤 자동으로 만들어졌다. 채널을 돌리다 경기를 만나고, 뉴스가 하이라이트를 반복해주고, 포털 첫 화면에서 주요 장면이 걸리고, 직장과 학교에서 “봤어?”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이 경기를 만나는 길이 한 가지가 아니다. 채널도, 화면도, 시간도 제 각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먹고 ‘찾아보는’ 것보다, 포털과 SNS에서 먼저 마주치는 장면에 반응한다. 


관심은 검색어에서가 아니라, 노출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 메가 이벤트가 국민적 사건이 되려면, 중계만으로는 부족하다. 


안내가 있어야 하고, 하이라이트가 빨라야 하고, 선수의 얼굴과 이야기가 축적돼야 하고, 함께 보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네 톱니가 동시에 맞물릴 때 비로소 ‘대대적인 응원’이 생긴다.


이번 대회는 그 톱니가 동시에 헛돌았다. 중계 창구가 좁아진 상황에서 시차까지 겹치면, '함께 보는 시간'은 더 줄어든다. 


그럴수록 ‘다음날의 이야기’가 중요해지는데, 사람들이 아침에 가장 먼저 마주치는 화면(포털, 유튜브, SNS)에서 승전보가 충분히 재가공되고 확산되지 못하면 감동은 고립된다. 


유승은의 1440 두 번, 김상겸의 0.19초가 ‘알고 보니 대단한 장면’으로만 소비되는 순간, 올림픽은 축제가 아니라 결과 알림이 된다. 


이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월드컵으로 옮겨간다. 월드컵은 ‘원래 뜨겁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의 조용한 현실을 겪고 나니, 그 말을 더는 장담처럼 반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올해 월드컵 역시 특정 방송사가 중계권을 쥔 구조다. ‘한 곳에 묶인 중계’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로 굳어졌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대중의 접점은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은 단순한 ‘시청권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이런 대형 스포츠가 다시 ‘공동의 경험’이 되려면,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맞는 최소 장치를 현실적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대표팀 경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경로’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모든 경기를 같은 방식으로 보게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대표팀 경기와 4강·결승 같은 핵심 순간만큼은, 국민이 복잡한 절차 없이 곧바로 접속할 수 있는 열린 시청 창구가 있어야 한다. 


중계가 한 곳에 쏠린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이 ‘열린 창구’가 선택이 아니라 안전장치에 가깝다.


다만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중계권을 가진 특정 방송사가 큰돈을 들여 권리를 확보했다면, 그 방송사에게 “핵심 경기만이라도 내놓으라”는 주문은 공허해지기 쉽다. 


시장 논리 위에서 굴러가는 시스템을 ‘선의’에만 기대선 안 된다. 그렇다고 월드컵이 ‘찾는 사람만 찾는 콘텐츠’로 축소되는 걸 방치할 수도 없다. 


여기서부터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진다. 정부 개입과 세금의 사용은 “그 방송사에게 공짜로 내놓으라”가 아니라, 국민이 볼 수 있는 길을 공공이 비용을 들여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도달률(얼마나 많은 국민이 실제로 볼 수 있는가)’에 예산을 붙이는 것이다. 정부가 대표팀 핵심 경기나 준결·결승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에 대해, 국민 다수가 접근 가능한 창구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대신 조건을 명확히 한다. 지원을 받는 방송사는 핵심 경기 접근 장벽을 낮추고, 경기 직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공식 하이라이트가 널리 퍼지도록 일정 수준의 공개·배포와 안내 의무를 이행한다. 


세금은 특정 방송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돈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체감할 ‘공동의 순간’을 확보하는 비용이어야 한다.


공영방송·공적 플랫폼 중심의 ‘스포츠 공공 접근 기금’도 검토할 만하다. 집에서 경기를 보기 어려운 사람이 늘수록, 공공이 최소한의 ‘경로’를 마련해 주는 건 문화정책의 영역이 된다. 


동시에 지자체와 정부가 도시 팬존 같은 공공 응원 거점을 공식 인프라로 깔아주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집이든 광장이든, 중요한 건 “다 함께 같은 장면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세금의 목적은 중계권을 빼앗는 데 있지 않다. 시장 구조가 바뀐 뒤에도 축제가 사회 전체의 경험으로 남도록 받쳐 주는 데 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진짜 승부는 ‘다음날 아침’이다. 월드컵은 경기 시간대가 다양하고, 대중의 생활 리듬도 제각각이다. 


그럴수록 공식 하이라이트의 속도와 도달 범위가 관심의 온도를 결정한다. 핵심 장면과 선수 이야기가 사람들이 가장 자주 스치는 화면—포털 첫 화면, 유튜브, SNS—에서 빠르게 돌아야 열기가 이어진다. 


반대로 그 흐름이 막히면, 대회는 쉽게 조용해진다. 독점의 성패는 중계 화면의 선명도가 아니라, 장면이 사회로 번지는 속도에서 갈린다.


월드컵을 ‘혼자 보는 경기’에서 ‘함께 보는 경험’으로 되돌리는 일도 필요하다. 도시별 팬존, 지역 상권과 연결된 응원 거점, 안전·교통·운영까지 묶은 패키지가 있어야 '같이 본 기억'이 남는다. 


그 기억이 있어야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공기가 생긴다. 화면 안의 편성만 손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화면 밖의 공동체 경험이 복원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수의 이름과 얼굴을 ‘대회 이후’가 아니라 ‘대회 이전’부터 축적해야 한다. 한 번의 승리보다 강한 건, 대중의 기억 속에 남는 한 사람의 서사다. 


'아는 선수'가 많을수록 시청은 습관이 되고 응원은 문화가 된다. 이야기와 하이라이트가 제때 널리 퍼지면 열기는 만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그 흐름이 막히면, 대표팀이 잘해도 사회는 조용해진다.


여기까지가 ‘처방’이라면,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한 가지를 배웠다. 국가대표의 선전은 자동으로 국민적 축제가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늘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그 최선이 국민에게 닿는 길이 점점 좁아졌다는 데 있다. 길이 좁아지면 응원도 좁아지고, 응원이 좁아지면 대회는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 콘텐츠’로 쪼개진다.


월드컵을 앞둔 지금, 선택지는 두 가지다. '월드컵은 원래 뜨거워'라는 낙관에 기대거나, 뜨거워질 조건을 새로 설계하거나. 특정 방송사가 중계권을 쥔 구조를 탓하는 것으로 끝내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성의 기준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세금으로 ‘국민이 함께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사서 확보해야 한다. 


방송사는 독점의 권리만큼 사회적 책임의 방식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협회와 스폰서, 지자체는 ‘함께 보는 경험’을 만들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월드컵은 경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이 같은 장면을 같은 시간대에 공유할 수 있을 때, 승전보는 개인의 알림이 아니라 사회의 기억이 된다. 


올림픽에서 놓친 길을 월드컵에서 다시 열 수 있다면, 이번의 ‘조용한 현실’은 실패가 아니라 경고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고를 읽어내는 순간부터, 응원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글=이강토 위메이크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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