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과 충돌한 국가 예우, 서훈·유공자 제도 전면 점검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 당시 군 지휘관이었던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과 관련해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재차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단순한 재검토 단계를 넘어 취소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전면 검증 국면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훈 행정의 절차 문제를 넘어, 국가가 과거의 논쟁적 인물을 어떤 기준으로 예우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논란은 국가보훈부 산하 서울보훈지청이 박진경 대령 유족의 신청을 받아 국가유공자 등록을 승인하고, 대통령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가 전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토벌 작전을 지휘한 군 인물로, 진압 과정에서의 강경 대응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런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이 4·3 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의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제주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유공자 지정의 적절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18일 국방·보훈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취지로 재차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보훈 당국이 설명해 온 ‘법정 요건 충족에 따른 행정 처리’라는 입장에 대해, 형식적 요건을 넘어 판단의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까지 다시 따져보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쟁점의 핵심은 유공자 지정의 근거다.
보훈 당국은 박진경 대령이 1950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받았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이뤄졌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박 대령은 1948년 이미 사망한 인물로, 6·25전쟁 시기의 무공훈장이 사후 수여된 구체적 경위와 공적 내용이 명확히 확인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훈의 핵심 자료인 공적조서의 존재 여부와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은, 유공자 지정의 행정적 정당성을 흔드는 요소로 지적된다.
이번 사안에서 유족 관계가 함께 언급되는 이유는 또한, 유공자 지정과 예우가 법적으로 직계 유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제도 구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박진경 대령은 직계 자녀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족 관계 정리 과정에서 형의 아들 박익주가 양자로 입적돼 법적 유족 지위를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익주는 군 복무를 거쳐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으며, 이후 정계에 진출해 제11·12대 국회의원(경남 남해·하동)지내고 한국 도로공사 이사장등 공적 활동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박익주의 아들로, 박진경 대령의 손자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박철균 예비역 육군 준장·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거론된다. 박철균 역시 군 복무 후 준장으로 예편했으며, 이후 학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현재까지 유족 개인이 유공자 지정 판단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거나 특혜를 요구했다는 정황은 없다.
유족 측 입장도 비교적 분명하다. 당시 박익주(전 육군 준장·전 국회의원) 측은 박진경 대령이 당시 군인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보여왔으며, 국가유공자 신청 역시 유족으로서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으로 전해진다.
박철균(예비역 육군 준장·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이번 논란을 유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박진경 대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이 확산된 배경에는 국가유공자 제도가 단순한 보상이나 복지를 넘어, 국가가 특정 인물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리는 상징적 행위라는 점이 자리한다.
1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제주4·3범국민위원회 회원들이 제주 4·3사건 당시 강경진압을 주도한 고(故)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을 규탄하며 등록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4.3 피해자와 유족, 제주 지역사회는 “국가 폭력 책임 논란 인물을 예우하는 것은 역사 정의와 피해회복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군 지휘 체계를 현재 기준으로 재단죄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행정 안정성과 법적 분쟁 가능성을 우려한다.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해법은 보훈부의 유공자 등록 직권 취소 또는 정정, 국방부 차원의 무공훈장 적정성 재검토, 독립적인 재심·검증 절차 구성 등이다.
종합하면, 이번 사안은 한 인물이나 한 유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유공자 제도의 심사 기준과 과거사 인식이 행정 판단에 어떻게 반영돼야 하는지를 묻는 구조적 질문이다. 대통령의 “방법을 찾으라”는 주문은 취소 여부 자체보다, 취소든 유지든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한 근거와 절차를 갖추라는 요구로 읽힌다.
정부의 최종 판단이 향후 유사한 논쟁적 인물들에 대한 보훈 기준과 과거사 정리의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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