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SP 일관제철소 ‘최대 성공 사례’ 뒤 노동채무 80% 남긴 채 파산…
- 현지는 “먹튀·야반도주”, 포스코그룹·한국 기업 신뢰 시험대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엔지니어링)가 브라질 대형 제철소 건설 사업을 마친 뒤 약 1,740억 원에 달하는 미지급 채무를 남긴 채 현지 법인을 사실상 철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채무의 80% 이상이 임금·퇴직금·사회보장기여금 등 노동 관련 채무로 파악된 가운데, 현지에서는 “사전 협의도, 충분한 정산도 없이 떠났다”는 분노가 확산되고 있으며, 사태는 포스코그룹 책임론은 물론 한국 기업 전체의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번 사안은 한국보다 브라질 현지에서 먼저 폭로됐다. 세아라주 유력 일간지 Diário do Nordeste는 포스코이앤씨 브라질 법인이 6억4,000만 헤알(약 1,740억 원)의 채무를 신고하며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고 전하면서, 이를 “calote milionário(수억 헤알 규모의 먹튀)”, “노동자를 버린 외국 기업”이라고 직설적으로 규정했다.
현지 보도는 완곡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책임 회피라는 판단을 전면에 놓고 있다.
법원 제출 자료에 따르면 채무 대부분은 현지 근로자 임금·퇴직금·사회보장기여금과 협력업체 공사대금이다.
특히 노동 채무 비중이 80%를 넘는다는 점이 분노를 키웠다.
재무 구조 역시 의문을 더한다. 신고 자산은 약 4,700만 헤알(약 122억 원)로 기재됐지만, 즉시 변제가 가능한 유동자산은 1만1,000헤알(약 30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상당 자산이 사법 공탁금으로 묶여 있어 재판 결과 전까지 채권자 배분이 어렵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회생을 가장한 시간 끌기”, “사실상 청산 수순”이라는 냉소가 잇따른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이 된 사업은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 페센(Pecém) 산업단지에 건설된 CSP 일관제철소 1단계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브라질 최대 철광석 공급업체인 Vale와 동국제강, 포스코가 합작해 추진한 대형 프로젝트로, 연간 슬라브 300만 톤 생산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총 투자금은 약 49억 달러에 달했으며, 한국 건설사가 수행한 해외 제철 플랜트 가운데서도 사실상 최대 규모로 평가돼 왔다.
이 프로젝트에서 포스코이앤씨는 단순 시공을 넘어, 원료·소결·코크스·고로·제강·연주·발전 및 각종 부대설비에 이르기까지 설계·조달·시공(EPC)을 전 공정 일괄 수행했다.
포스코이앤씨는 그간 이 CSP 프로젝트를 자사 홍보 자료에서 “한국 건설사에 길이 남을 사실상 최대 규모의 제철 플랜트 공사”, “글로벌 EPC 역량을 입증한 대표 성공 사례”로 소개해 왔다.
그러나 바로 이 대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후, 브라질 현지 법인이 노동채무 중심의 대규모 미지급 채무를 남긴 채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현지에서는 “성과는 본사가 가져가고, 책임은 현지에 남겼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분노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다.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과 공사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협의도 설명도 없이 사라졌다”고 호소한다.
현지 노동계는 이번 사안을 기업 파산이 아닌 노동 문제로 규정하며, 외국 자본의 책임 회피를 경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런 여론 속에서 브라질 연방검찰은 단순한 경영 실패를 넘어 고의적 채무 회피나 자산 이전 가능성까지 들여다보기 위해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사안의 무게를 더하는 대목은 비판의 화살이 이미 포스코이앤씨를 넘어 ‘한국 기업’으로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 시장에서는 한 번 형성된 인식이 국적 전체로 확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지 업계와 언론 일부에서는 “한국 대기업도 위기 앞에서는 현지 노동자와 협력업체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글로벌 EPC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례가 향후 입찰 경쟁력, 금융·보증 조건, ESG 평가에까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 채무 방치와 사회적 책임 회피는 국제 투자 기준에서 가장 강력한 감점 요소이기 때문이다.
논란은 자연스럽게 포스코그룹으로 이어진다. 브라질 법인은 형식적으로 독립 법인이지만, 대형 EPC 사업의 수주·자금 운용·사업 종료 판단 과정에서 본사의 전략적 관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지 법인 책임”을 앞세우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는 법률적 방어를 넘어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와 윤리 문제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규제와 판례의 흐름 역시 모회사의 실질 지배력을 기준으로 연대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현재까지 포스코이앤씨와 포스코그룹 차원의 종합적 해명과 피해 구제 방안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 침묵 자체가 무책임의 연장선으로 해석되고 있다.
분노가 커질수록 요구되는 것은 법률적 문구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책임 인정, 그리고 실질적 수습이라는 목소리다.
이 문제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다면, ‘포스코이앤씨의 문제’는 곧 ‘한국 기업의 문제’로 굳어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는 비용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한 번 잃으면 회복에 가장 긴 시간이 걸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의 분산이 아니라, 책임의 수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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