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중국 지도부를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후이저우를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다. 후이저우, 아주 낯선 지명이지만 이곳이 함의하는 의미는 무한가지다.
장쩌민, 후진타오를 비롯해 상하이방이나 지앙쑤 출신의 사고는 이곳 후이저우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조상의 연원은 대부분은 후이저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후이저우의 기품 있는 마을 가운데 하나인 시디(西遞)와 홍춘(宏村)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피난지이다. 항저우나 쑤저우 등은 큰 전쟁에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에 속하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의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이곳에서 좀더 들어와 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황산의 아래에 있는 이런 마을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그들 앞을 흐르는 강이 가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 신안강(新安江)은 부춘강(富春江)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전당강(錢塘江)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강의 이름처럼 처음에는 학문에 뜻을 품었다가 어려워지면 부를 쫓고, 결국은 돈의 못에 빠져드는 삶을 찾고 싶어 했다.
이 때문에 명나라 말기 이후 이곳 출신 휘주 상인은 전국을 주름잡는 대상인 집단으로 번성하였고, 이들은 각지에서 상업 활동으로 번 돈을 고향에 투자하였다. 휘상들이 고향에 지은 저택, 사당, 패방, 민가 등 각종 건축물이 전화를 거의 입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디는 사방이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로는 두 개의 내가 흐르고, 그 사이로 난 메인 거리를 바탕으로 형태를 이루었다. 도시의 집들은 흑백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이다.
마을은 11세기에 시작되어 14세기에서 500년간 번성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 정체된 시간을 보냈다. 124개 가구의 명청 옛집과 3곳의 사당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홍춘은 황산의 서남 산기슭에 위치한다. 홍촌은 대부분 왕씨(汪氏)로 이루어진 집성촌이다. 촌락은 12세기 중엽 남송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13세기 후반에 홍춘 왕씨가 이곳에 거주를 정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5세기 명 영락 연간에 유명한 풍수지리가를 초빙하여 촌락의 배치를 정하고 가로(街路)와 수로, 우물을 건설하는 등 오늘날 촌락의 기본 구조를 이때 만들었다.
툰시(屯溪)는 황산시를 일컫고, 시셴(縣)도 인근 여행 도시다. 툰시는 현재 황산시의 중심도시다. 이곳 인근에서는 흥미로운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파이팡(牌坊)이다.
파이팡은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조정의 허락으로 세운 공적비다. 낮게는 수m에서 높게는 10여m에 달하는 파이팡들은 과거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시셴에 못 미쳐 있는 탕위에파이팡쥔(棠팟牌坊群)과 시셴의 중심에 있는 쉬궈스팡(許國石坊)이다.
탕위에파이팡쥔은 건륭제가 강남을 순행하던 중에 빠오씨[鮑氏] 집안에 내린 파이팡으로 규모나 위엄에서 가장 큰 규모다.
반면에 쉬궈스팡은 명나라 만력제 때 예부상서나 무영전 대학사 등을 지낸 허국의 공을 그린 패방으로 높이 11.5m의 8각 패방이다. 8각 패방은 신하라고 해도 함부로 쓸 수 없는데 허국에만 허락된 것으로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패방이다.
재미있는 것은 허국이 조선을 방문해 우리 지식인들과 많은 교분을 나눈 인물이라는 것이다. 명 융경제는 등극 원년에 한림원검토(翰林院檢討)였던 허국과 병과좌급사중 위시량(魏時亮)을 조선에 보내 즉위를 알리는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허국 일행이 조선에 들어오는 도중에 명종이 붕어하고 선조가 왕위에 오른다.
다행히 그는 조선을 방문해 문묘와 성균관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조판서였던 박충원은 물론이고 고봉 기대승과도 시문을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맹자나 이기론 등에 익숙한 조선의 학문을 높이 사기도 했다. 허국은 관리뿐만 아니라 수행원에게도 시문을 주었는데, 당시의 교류한 문서도 어딘가에는 잘 보관되어 있을지 모른다.
쉬궈스팡에서 다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또우산지에(斗山街)가 있다. 후이저우 사람들은 본래 자식이 똑똑하면 공부를 시키지만 그렇지 않으면 장사를 시켰다. 때문에 후이저우는 최고의 거상인 호설암을 비롯해 많은 명 상인을 배출했다.
또우산지에는 그 상인들의 옛 본거지로 지금도 그들의 부유했던 생활을 볼 수 있는 고택들을 볼 수 있다. 물론 남자들은 장사와 학문을 위해 밖에 나갔지만 여인들은 하늘만을 튼 독특한 구조의 집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밥을 지어두던 쓸쓸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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