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빈국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53)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에 살해됐다. 정치 혼란과 치안 악화에 시달려왔던 아이티는 대통령 암살로 더욱 극심한 혼돈 속에 빠져들게 됐다.
AP·AFP통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임시 총리는 이날 새벽 1시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모이즈 대통령 사저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침입해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영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총에 맞았다. 보시트 에드몽 미국 주재 아이티 대사는 모이즈 여사가 안정적이지만 심각한 상태라며, 미국 마이애미로 후송돼 치료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제프 총리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라고 규탄하면서, 긴급 각료회의를 거쳐 아이티 전역에 계엄령을 선언하고 군과 경찰에 의한 통제를 강화했다.
이후 아이티 관보를 통해 2주간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포르토프랭스의 국제공항도 폐쇄돼 아이티를 오가는 항공편도 취소됐다.
지난 2017년 2월 취임한 모이즈 대통령은 바나나 수출업 등에 종사한 사업가 출신으로, '바나나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임기 등을 두고 야권과 끊임없이 갈등했으며, 야권의 반발 속에서도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해왔다.
암살의 정황이나 배경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제프 총리는 이날 대통령 암살 소식을 전하면서 "고도로 훈련되고 중무장한 이들에 의한 매우 조직적인 공격"이었다고 말했다. 총리는 암살범들이 아이티 공용어인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 대신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에드몽 주미 아이티 대사도 "잘 훈련받은 전문 외국 용병"의 소행이라고 외신에 주장했다. 에드몽 대사는 현장 영상 속에서 괴한들이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 행세를 했다며, 이들이 DEA 요원일 리는 없다고 말했다. 주미 아이티 대사는 암살범들이 육로나 해로를 통해 이미 아이티를 탈출했을 수도 있다며, 미국 정부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아이티 대통령 피살 소식에 국제사회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모이즈 대통령 암살을 규탄하며 "혐오스러운 행위 앞에 모든 아이티 국민이 단결하고 폭력을 배척해달라"고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아이티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모이즈 대통령에 대한 끔찍한 암살과 영부인에 대한 공격 소식에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다"며 "이 극악무도한 행위를 규탄하며, 영부인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도 "아이티 국민 전체에 대한 잔혹하고 비열한 행위"라고 규탄하는 등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아이티와 국경을 맞댄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은 모이즈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곧바로 육로 국경을 폐쇄하기도 했다.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 서쪽에 위치한 인구 1천100만 명의 아이티는 빈곤율이 60%에 달하는 극빈국이다.
2010년 대지진과 2016년 허리케인 매슈 등 대형 자연재해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던 상황에서 최근 극심한 정국 혼란과 치안 악화도 겪어왔다. 부패와 빈곤, 범죄 증가에 분노한 시위대의 대통령 퇴진 시위가 이어졌으며, 야권은 모이즈 대통령의 임기가 올해 2월 이미 종료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임을 촉구해왔다.
오는 9월에는 모이즈 대통령이 추진해온 개헌 국민투표와 대선, 총선이 한꺼번에 예정돼 있어 선거를 앞두고 혼란 심화가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치안도 악화해 최근 들어 몸값을 노린 갱단의 무차별 납치 범죄도 급증했다. 위기가 지속됐던 상황에서 대통령 암살 사건까지 벌어지며 아이티가 더욱 극심한 혼돈 속에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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