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절반에 가까운 43.7%가 임금체불을 경험했고, 3명 중 2명(66%)은 한국사회의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7명(69.9%)은 ‘임금체불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서’가 임금체불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고,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의사불벌죄 폐지(26.7%)와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18.9%)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명절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불 대책에는 반의사불벌죄 폐지,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과 같이 실효성이 높고 직장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제도가 또 빠져 있다. 정부가 앞에서는 강력 대응, 엄정한 사법처리를 말하면서 사실상 ‘체불사업주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9월 1일부터 6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 기준에 따라 임금체불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직장인 1000명에게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437명(43.7%)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임금체불 경험은 일터의 약자인 비정규직(49%), 생산직(51.5%)이 정규직(40.2%), 사무직(39.8%)보다 10% 가량 높았다. 체불된 임금의 종류는 기본급이 30.2%로 가장 많았고, 퇴직금(28.1%),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27.8%), 기타수당(24.5%), 연차수당(23.2%) 순이었다.
임금체불에 영향을 끼친 응답자 특성은 고용형태와 직업이었다. 비정규직은 연차수당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정규직보다 임금체불을 더 많이 경험했다. 특히 기본급 체불 응답은 34.8%로 정규직(27.2%)보다 7%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직업별로 보면 생산직의 임금체불 경험이 기본급(37.7%),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40.2%), 연차수당(29.9%), 퇴직금(31.9%)으로 사무직에 비해 10%포인트 정도 높게 나타났다.
임금체불을 경험한 응답자들(n=437)에게 이후 대응 방법을 물어본 결과, 회사를 그만두거나(22.4%) 모르는 척(19%)하며 대응을 포기했다는 응답이 41.4%에 달했다. 회사에 지급을 요청했다는 응답은 59.5%, 고용노동부, 국민권익위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4.3%였다. 임금체불 경험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응답은 정규직(18.3%)보다 비정규직(27.6%), 임금 500만원 이상(17%)보다 150만원 미만(30.2%), 사무직(16.6%)보다 비사무직(27.3%)에서 높게 나타났다.
임금체불에 대응하지 않은 응답자(n=170)들에게 이유를 묻자 ‘대응을 해도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가 43.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외에는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30.6%), ‘체불된 임금 금액이 적어서’(15.3%), ‘시간이 없어서’(8.8%) 순이었습니다. 이 중 ‘시간이 없어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16.9%)이 정규직(2.2%)보다 7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직장인들에게 한국사회 임금체불 문제의 심각성을 묻자 ‘심각하다’ 응답이 66%로 ‘심각하지 않다’(34%) 응답의 2배에 달했다. 응답자 특성별로는 5인 미만(68.1%), 5인 이상 30인 미만(70.1%)의 ‘심각하다’ 응답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임금체불 발생 이유로는 ‘임금체불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서’가 69.9%로 가장 높게 나타나 ‘사업주가 지불 능력이 없어서’ 응답(23.6%)의 3배였다.
임금체불 문제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로는 ‘반의사불벌죄 폐지’(26.7%)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임금체불 신고 후 당사자가 합의를 하더라도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를 이은 것은 ‘3년에서 5년으로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18.9%)과 ‘체불임금 지연이자제 모든 임금체불에 적용’(14.2%), ‘대지급금 제도 확대’(13.3%),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강화(9.9%), 포괄임금제 폐지(8.5%) 등이었다.
대표적인 사용자의 임금체불 수법은 ‘사정이 어렵다’며 ‘양해 강요’를 반복하는 유형이다.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사정을 봐줘도 결과는 대부분 사직서 제출로 이어지곤 한다. 일방적으로 사업주가 체불임금 미지급을 통보하고 ‘동의서’를 강요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임금 포기각서’와 같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전의 채권을 포기하는 내용의 합의를 체결하는 것은 무효지만, 이미 발생해서 받아야 할 채권을 포기하는 것은 유효하기 때문에 ‘체불임금 포기각서’에 서명하면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관계법령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계약의 실질이 중요하다는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청은 프리랜서 노동자가 임금체불 고소를 하면 계약서의 내용이라는 형식적 지표만을 놓고 ‘근로자가 아니니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사업주의 법 악용과 감독기관의 방치로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피해를 입고도 근로자성 입증까지 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한편 복잡한 하도급 계약 구조 속에서 ‘팀장’ 등으로 불리는 무등록 개인업자에게 속한 ‘팀원’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는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돈을 받아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부 여당이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임금체불 대책에는 임금체불 반의사불벌죄 폐지나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 체불임금 지연이자제 전면 적용 등 사용자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제도가 언제나 빠져 있다. 고용노동부가 8월 31일 발표한 추석 대비 체불예방 및 조기청산 대책에도 체불 근로자 생계비 융자, 체불 청산 지원 사업주 융자 금리 한시적 인하 등과 같은 사업주 지원 대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건설업, 소규모 제조업 같은 취약 업종을 중심으로 한 체불 예방 활동과 집중 지도, 전국적인 기획 감독은 필요하지만 이 역시 지속할 수는 없는 임시 대책에 불과하다.
임금체불은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인 만큼 임금체불을 저지른 사용자에게는 실질적인 처벌과 불이익이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임금체불이 여전히 반의사불벌죄로 남아있는 한,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가 오히려 ‘체불임금 중 일부만 받겠다고 하면 돈을 빨리 주고 상황을 끝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황당한 합의안을 피해자에게 제시하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이를 수용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말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임금체불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하고, 체불임금 지연이자제를 전면 적용해야 한다. 또 임금체불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크게는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단기적으로는 근로관계 실질을 감안하여 적극적인 사건 처리에 나서야 한다.
직장갑질119 조주희 노무사는 “근로계약관계상 사용자가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는 임금지급의무이고, 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를 유지하는 필수적 수단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에서도 임금 지급에 관한 규정 위반시 최대 3년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의 벌금이라는 중형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이번 특별 대책은 단속 기간동안만의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 실제 다양한 형태의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임금체불을 예방하고,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지급해야하는 임금을 갑질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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