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인지 인연인지 그 경계를 알기란 참 어렵다. 인연은 새빨간 거짓말처럼 찾아오고 바람은 팔랑팔랑 인연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채점을 하고 나면 오답이 눈에 들어오듯이 우리는 늘 뒷북을 치며 살아간다. 1초 후도 모르는 길에 서서 난 그저 시간의 구슬들을 알알이 주워 담을 뿐이다. 내 남편 우대리와의 첫 만남도 그러하였다.
전설의 카피라이터 김모 선생님이라고 계셨다. 광고계에서 그분의 아우라는 정말 대단했다. 그분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분의 며느리가 되고자 그 집 아들에게 이른바 ‘작업’을 걸던 시기가 있었다.
먼저 바람을 잡은 것은 직장 상사 두 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순해 빠진 놈들이 없지. 너희 둘은 천생연분이 분명해~”라는 진심 어린 조언과 함께 살신성인으로 둘의 다리가 되어주셨다. 우리 넷은 북한산자락에서 낙엽에 누워 뒹굴었고 한강족발집에서 풀린 눈으로 서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젠장 아무리 애써 봐도 사랑이란 감정이 안 생기는 것이다.
지금의 남편은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우습게 바라보던 파티션 건너편의 우대리였다. 우대리는 맹세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튀어나온 입술은 ‘싼 티 작렬’이었고, ‘지구 왕대가리’란 별명처럼 머리 둘레가 유난히 큰 필리핀계 느낌의 대두였다. 정작 본인은 ‘스치기 쉬운 입술’이라며 신체의 열등감을 섹스어필로 들이대곤 했다. 스치기 쉬운 건 알겠는데 당최 스치기 싫은 입술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특이한 구강구조로 하여 딥 키스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못내 아쉬워하였다.
예의 바람잡이들은 우대리에 대해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그놈만은 안 돼, 너랑 안 어울려, 책임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그놈을 겪어본 자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 이어졌다. 한 자존심 하는 우대리도 스물다섯 이상은 여자로도 안 본다며 ‘엇다 들이대는 거냐’고 외려 불쾌감을 표시했다.
우린 농담의 수위를 높여가며 서로를 집요하게 놀려 먹었다. 나랑 결혼할래요? 물론 농담, 이라며 우대리는 날 놀려 먹었고, 우리 사이 부모님께 말했어요 물론 농담, 이라며 난 우대리를 놀려 먹었다. 오고 가는 농담 속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몇 번은 도끼질에 넘어가다, 몇 번은 도리질 치다, 우린 정이 들고 말았다.
바람잡이가 열 있으면 뭐하겠는가? 인연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과 같다. 우대리는 여러 사람의 핑퐁을 거쳐 어느 날 문득 내 삶의 흰 라인 안으로 뚝 떨어졌다. 그것은 외계인의 출현만큼이나 낯설었다. 결혼 후 얼마간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내가 왜 이 남자랑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며 이방(異邦)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화들짝 놀라곤 했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 인연의 궤적은 선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 우리가 이래서 이래서 이렇게 만났구나 하는.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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