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은 즐거운 판타지다. 약간의 사실에 거짓말이란 설탕가루를 뿌려 부풀리는 솜사탕이다. 때로 허풍은 현실의 거센 물살을 건너가는 환상의 목발이 되어준다. 이런 착각은 맛있다. 현실을 부풀리는 즐거운 착란으로 현실을 달달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대리는 뼛속까지 ‘오바맨’이었다. 그의 첫 번째 구애는 ‘52평 아파트’로 시작되었다. “횡재지 그럼, 내 이름으로 52평 아파트가 있는데…” 우대리가 내 책상 근처에 얼씬거리며 흘린 일급 정보였다. 난 그의 낚시질에 걸려들고 말았다. ‘헉, 저 남자가 52평이라고?’ 내 얇은 귀가 팔랑거렸다. 하지만 알고 보니 현재는 날아가고 없는 과거의 집을 들먹거린 것이었고, 마주한 신혼의 현실은 11평 전세였다. 거기에 홀린 내 마음은 어디서 보상 받을까?
브룩 쉴즈가 자기에게 대시했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한 일도 있다. 동양에서 온 ‘돌출입 딴따라’가 샌프란시스코의 나이트클럽 무대를 접수하자 홀딱 반한 그녀가 치근덕거려서 혼났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재벌 2세녀가 자기랑 안 사귀면 죽겠다고 한밤중에 한강대교에서 난동을 피워 진땀을 뺐다는 ‘재벌 2세 자살 소동설’도 있다. 스쳐간 걸들을 암시하는 우대리의 허풍은 정말이지 밥맛이었다.
사기성 농후한 발언들의 저의는 뭘까? ‘이래 봬도 나, 브룩 쉴즈도 후리던 남자야. 놓치면 후회할 대박 남자라고’ 이런 뒷말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야 드러난 허풍의 진실은 어처구니없었다. 부룩 쉴즈는 ‘부룩 쉴즈급’ 미모로, 재벌 2세는 빌딩부잣집 외동딸로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사실무근 부풀려진 이야기는 사실의 뚜껑을 따자마자 김이 팍 샌 사이다가 되어버렸다.
이 사람의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우대리의 ‘뻥’과 ‘진실’을 가늠하고 있을 때 긴가민가하던 내게 확신을 준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시절 남편이 미국 여행 갔을 때의 이야기다. 공항에 마중 나온 선배는 짐 찾고 입국 수속하려면 한참 걸리겠지 했는데 웬 걸, 검은 봉다리에 칫솔 하나 빙빙 돌리며 우대리가 일착으로 입국하더란다. “다른 짐은?” 선배가 묻자 “같이 쓰면 되죠 뭐”라고 막무가내 대답하더란다.
두 달 해외여행에 달랑 칫솔 하나라니… ‘이 남자 어디 가서도 먹고 살겠군’,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내게 이 정도의 뻔뻔함이라면 맘껏 기대도 좋으리란 생각이었다. 비록 빌붙어 사는 능력일지라도 이것도 능력이 아닌가. 나는 우대리의 ‘빌붙는’ 능력이 지금까지 우리 집을 먹여 살린 중요한 생존의 근간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지난 십칠 년 동안 나는 허풍으로 포장된 남편의 과대 포장지를 풀고 또 풀었다. 십칠 년이 흐르고서야 ‘겨우 한 줌뿐인 그’가 보이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풀지 말걸, 그냥 휘황한 포장에 싸여 큰소리치게 내버려둘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쉬시이이이익,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 서글프게 들려온다.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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