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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설의 시대’가 아닌 ‘사람을 남기는 기술’이 상권을 살린다

  • 박상현 기자
  • 입력 2026.02.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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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도시재생 현장과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지를 돌며 컨설팅을 하다 보면,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풍경을 마주하곤 한다. 

 

수십억, 아니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번들거리는 3층짜리 커뮤니티 센터, 최신식 주방 기구를 갖춘 공유 주방, 그리고 청년들이 들어와야 할 텅 빈 창업 공간들이다.

 

개소식 날, 화려한 테이프 커팅식과 함께 정치인들과 기관장들이 박수를 치고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불과 6개월 뒤, 그곳에는 '운영난으로 인한 임시 휴관' 혹은 '임대 문의'라는 초라한 A4 용지 한 장만이 나부낀다. 

 

우리는 이것을 '도시재생'이라 부르고 있지만, 냉정히 말해 이것은 '세금으로 지은 거대한 공실(空室)'에 불과하다.


필자는 그간 지역상권 및 전통시장 활성화, 그리고 도시재생 지역역량강화(S/W) 프로그램 사업을 다수 운영하며 이 기형적인 구조의 민낯을 목격했다. 

 

건물을 짓는 '하드웨어'에는 예산의 80%를 쏟아부으면서, 정작 그 건물을 움직일 '소프트웨어(사람과 콘텐츠)'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현실 말이다. 이제는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건물은 남았는데, 그 안의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도시를 살릴 수 있을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량 강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성이다. 어느 지역을 가든 똑같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비누 만들기 체험을 하고, 가죽 공예를 가르친다. 소위 '취미 교실' 수준의 프로그램들이 '주민 역량 강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예산을 소진한다.

 

냉정하게 묻고 싶다. 마을 주민 20명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면, 그 마을 카페가 스타벅스와 경쟁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상권 육성과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필요한 역량은 '커피를 내리는 기술'이 아니다. '원가 분석을 통한 메뉴 가격 설정', '우리 마을만의 스토리텔링 마케팅', '악성 민원을 해결하는 갈등 관리 능력', '보조금 없이 관리비를 벌어들이는 수익 모델 기획력'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며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비즈니스 마인드'의 이식이다. 단순히 착한 이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자생적 경제 주체'를 키워내는 것, 그것이 진짜 역량 강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수료 인원 채우기에 급급해, 실질적인 '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도시의 문법과 농촌의 문법은 다르다

 

또 하나의 패착은 '맥락 없는 적용'이다. 도시재생과 농촌 활성화는 그 접근법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 도시재생 지역, 특히 골목 상권이 쇠퇴한 원도심에서는 '혁신'과 '갈등 관리'가 핵심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상권을 띄워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건물주와 임차인을 중재하고 청년 창업가(로컬 크리에이터)를 유입시켜 기존 상인들과 융합시키는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하다. 여기엔 젊은 감각의 '타운 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 도입이 시급하다.

 

반면, 농촌 중심지는 철저히 '생활 서비스'와 '커뮤니티 케어' 중심으로 가야 한다. 고령화된 어르신들에게 도시의 화려한 청년몰 성공 사례를 들이밀며 복잡한 무인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농촌에서는 수익성보다 '공공성'이 우선이다. 70대 이장님이 직접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을 만큼 운영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수익이 적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밥 한 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복지 공간'으로 설계해야 한다. 도시의 성공 방식을 농촌에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하려는 행정 편의주의가 농촌의 거점 시설을 흉물로 만들고 있다.


'마중물'이 끝난 뒤의 재앙을 막으려면

 

정부 지원 사업은 마중물이다. 3년, 길어야 5년이면 펌프질은 멈춘다. 그 이후의 시나리오는 명약관화하다. 전기세와 수도세, 승강기 유지비 등 매달 수백만 원씩 청구되는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주민 갈등이 폭발하고, 결국 지자체에 "제발 다시 가져가 달라"며 열쇠를 반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하드웨어 예산의 최소 30%를 '운영 준비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물을 다 짓고 나서 운영자를 찾는 것은 늦다. 

 

설계 단계부터 운영 주체(마을관리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등)를 발굴하고, 그들이 공사 기간 내내 운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게 해야 한다.

 

둘째, '공간 기획자'와 '상권 전문가'의 개입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 건축가가 설계를 끝낸 뒤에 콘텐츠를 채우려니 공간과 용도가 맞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 

 

상권 분석 전문가와 프로그램 기획자가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이 공간은 팝업 스토어에 최적화된 동선으로", "저 공간은 공유 오피스로"와 같이 구체적인 수익 모델을 기반으로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셋째, 실패를 용인하는 '테스트 베드(Test Bed)' 기간을 둬야 한다. 준공 후 바로 주민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1~2년 정도는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운영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는 인큐베이팅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시는 벽돌이 아니라, 기억과 관계로 지어진다

 

이탈리아의 소도시들이 수백 년간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화려한 랜드마크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곳을 지키는 상인들의 자부심, 이웃 간의 끈끈한 네트워크, 그리고 그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크고 웅장한 '앵커 시설'이 아니다. 그 공간의 불을 끄지 않고 지켜나갈, 훈련되고 준비된 '앵커 피플(Anchor People)'이다.

 

결국 이제는 사람을 키우는 속도를 높혀야 한다. 보도블록을 한 번 덜 교체하더라도, 그 예산으로 지역 청년 상인 하나를 더 키우고, 상인회장에게 마케팅 교육을 한 번 더 시켜야 한다.

 

건물은 낡으면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지만, 무너진 공동체와 상권의 생태계는 억만금을 줘도 다시 복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성패는 결국, '건물이 남느냐, 사람이 남느냐'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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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만 비스타컨설팅연구소 대표(경제학 박사)

 

약력

- 공공정책 연구 경력 21년, 정책분석평가사 1급, 소상공인지도사 1급

- 한국동행서비스협회 부회장

- 前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부 연구위원

- 前 건국대, 남서울대, 한세대, 한서대, 백석대 등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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