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한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55명이 목숨을 잃고, 300명 가까운 주민이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파악됐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악, 1948년 176명이 숨진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에 최대 인명 피해다.
당국은 원인 규명을 위해 보수공사 책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하고, 홍콩 전역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아파트 보수 현장을 일제 점검에 나섰다.
26일 오후 2시 52분(현지시간),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31층짜리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사망자는 이날 오전 44명에서 오후 들어 55명으로 늘었다. 홍콩 소방처는 “사망자 55명 중 51명은 현장에서, 4명은 병원 이송 뒤 숨졌다”고 밝혔다.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 1명도 희생됐다.
인도네시아 외무부는 홍콩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자국민 2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부상자는 72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소방관 8명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내부에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200명 이상이 여전히 실종 상태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행방불명자가 279명에 달한다”고 새벽에 밝힌 뒤, 소방당국은 구체적인 추가 발표를 유보하고 있다.
당국은 관광버스를 동원해 주민 대피에 나섰고, 약 900명이 인근 학교 등 임시대피소 8곳으로 이동했다.
■ 8개 동 중 7개 동이 불길 휩싸여…24시간 지나도 진화 못 끝내
웡 푹 코트는 1983년 입주한 노후 공공주택으로, 2천 가구 4천800명이 거주하는 대단지다. 화재는 8개 동 가운데 7개 동으로 번졌다. 4개 동은 약 10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지만, 나머지 3개 동은 발생 24시간이 지나서도 진화가 끝나지 않았다.
홍콩 소방처는 오후 6시 22분 화재 경보를 최고등급인 5급으로 격상했다. 이는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처음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숨진 소방관과 희생자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피해 최소화를 지시했다고 중국중앙TV(CCTV)는 보도했다.
■ 불길 키운 ‘대나무 비계’…가연성 자재가 악재 겹쳐
이번 참사가 대형으로 번진 원인으로는 아파트 외벽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된 대나무 비계(足場)와 가연성 안전망·방수포 등이 지목된다. 홍콩은 여전히 대규모 고층 건축 현장에서 대나무 비계를 쓰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보수공사 과정에서 외벽 전체를 감싼 비계와 비닐막, 방수포가 화염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불길이 수직으로 치솟았고, 구조물이 ‘불기둥’을 만들며 급속 확산된 것이다.
홍콩 경찰은 타지 않은 외벽에서 강한 인화성 스티로폼 판이 대거 발견됐다고 밝혔다. 건물 내부 환풍구 등에서도 스티로폼이 확인됐다. 경찰은 단지 관리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공사업체 책임자 3명을 체포했다.
주민들은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책임자들이 중대한 과실을 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존 리 행정장관은 페이스북에 “홍콩 전역의 대규모 보수 공사 아파트를 긴급 전수조사했다”고 밝혔다.
■ 도시 기능 일부 마비…선거·문화행사 줄줄이 중단
타이포 일대 고속도로가 폐쇄됐고, 일부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다음 달 7일 예정된 입법회(의회) 선거 유세도 전면 중단됐다. 존 리 장관은 “선거 연기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스포츠 행사도 잇달아 차질을 빚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28일 예정이던 100㎞ 기부 트레일 행사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연기했고, 30일 개최 예정인 국제 사이클 대회 ‘싸이클로톤’도 취소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의 MAMA 어워즈 역시 일부 공연 연출 수정 여부를 검토 중이다.
중국 기업들도 지원에 나섰다. 마윈(알리바바 창업자) 재단은 6천만 홍콩달러(약 113억 원)를,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그룹은 3천만 홍콩달러 상당의 현금·장비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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