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계열사인 예가람저축은행에 200억 원 규모의 후순위 정기예금을 예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계열사 부당 지원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고객의 보험료로 조성된 자금을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는 고위험 상품에 장기간 묶은 것이 적절한 자산 운용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해 12월 30일 예가람저축은행에 200억 원 규모의 ‘기한부 후순위 정기예금’을 예치했다. 이자율은 연 3.04%, 만기는 10년 뒤인 2035년 12월 30일이다. 해당 거래는 지난해 12월 31일 공시를 통해 알려졌다.
후순위 정기예금은 일반 예금보다 금리가 다소 높지만,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경우 변제 순위가 뒤로 밀리고 예금자 보호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고위험 상품이다. 대형 보험사가 고객의 보험료를 운용하면서 굳이 계열 저축은행의 후순위 상품에 거액을 맡긴 배경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거래가 자산 운용의 수익성보다는 계열사의 자본 확충을 돕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저축은행 업권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건전성 우려가 큰 상황에서, 보험사가 계열사의 위험을 떠안는 구조가 적절하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예가람저축은행은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65.3%를 가진 고려저축은행이며, 대한화섬(22.16%)과 흥국생명(12.54%)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고려저축은행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장조카 이원준 씨가 각각 30.5%, 23.2%의 지분을 보유해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구조다.
이 같은 지배구조 속에서 흥국생명이 사실상 ‘자본 창구’ 역할을 하며 계열 저축은행의 건전성을 떠받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2024년 말에도 예가람저축은행에 100억 원 규모의 후순위 예금을 예치한 바 있다. 당시에도 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관리하기 위한 우회 지원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태광그룹은 과거에도 계열사 간 내부 거래 문제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른 전력이 있다. 이번 거래 역시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흥국생명 측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거래라는 입장이지만, 그룹 내 수직적 지배구조 아래에서 사외이사 등의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권의 계열사 간 불투명한 자금 거래와 대주주 영향력 남용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기조를 밝히고 있다. 흥국생명의 이번 200억 원대 후순위 예금 예치는 보험사의 자산 운용이 고객 이익보다 그룹 차원의 재무 관리에 활용됐는지 여부를 놓고 당국의 점검 대상이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 금리를 반영한 정상적인 거래였는지, 그리고 대주주나 그룹 차원의 압력이 작용하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보험 가입자의 권익 보호라는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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