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2015년 시즌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으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최치언 작, 김승철 연출)을 ‘창작공동체 아르케’와 ‘창작집단 상상두목’과 공동제작으로 오는 3월 12일(목)부터 29일(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린다.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언어 뒤편에 가려진 진실을 찾기 위한 작가적 언어놀이이자, 배우와 극장의 연극성을 극대화하는 유희성에 대한 고민으로 집필되었다. 이 작품은 굉장히 유치하고 과장된 언어와 형식을 차용하여 동시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도발적인 은유 속에 교묘하게 드러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과 소동의 이면에 진실은 사라진 채 실체 없는 허상만을 좇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대 위 쫓고 쫓기는 배우들의 모습 속에 씁쓸하게 비춰진다. ‘극중극중극’이라는 3중 액자 구조로 연극과 현실, 실제와 허상,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실체인가?’라는 작품의 의미를 형식적으로 확장시켜 보여준다.
지난 해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를 통해 ‘2014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을 수상한 최치언(45, 창작집단 상상두목 대표)은 2009년 남산예술센터 개관작 <오늘, 손님 오신다>(최치언 작, 최용훈 연출)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남산예술센터에 올리는 두 번째 작품으로, 고전의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거침없는 풍자를 이어온 김승철 연출(52, 창작공동체 아르케 대표)과 함께한다.
난생처음 만나는 ‘무협 액션 판타지’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무협 액션 판타지’라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기묘한 장르의 연극이다. 무대에 설치된 사각의 링 위에서 배우들은 태권도, 유도, 킥복싱, 가라데, 격투기, 권투, 택견, 당수도, 에어로빅 등이 뒤섞인,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무술과 권법을 쇼하듯 선보이고, 공연 내내 서부극이나 활극에나 어울릴 법한 과장된 액션으로 날아다닌다. 본격 ‘무협 액션 판타지’ 장르를 표방하는 극중극을 위해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프로덕션에는 실제 무술감독이 참여해 배우들의 무술 지도와 연기를 맡고 있다.
이러한 ‘무협 액션 판타지’ 장르를 통해 이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통쾌한 웃음”이다. 극중 공연감독의 말처럼 “만화보다 더 만화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머리를 텅 비워놓고 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실제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최치언 작가의 역대 작품 중 가장 유쾌하고 코믹한 작품으로, 그동안 주로 어둡고 폭력적인 블랙코미디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끄집어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허를 찌르는 상상력과 걸쭉하고 질펀한 대사, 극도로 과장된 인물들을 통해 도발적인 위트와 유머를 극한까지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자발적인 망가짐과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유쾌하고 호탕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내 작품이 던지는 화두들로 관객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극중 황백호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연극은 진짜 현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이 모든 걸 떠나 대체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누구인가, 실제로 그런 인물이 있기는 한 것인가. 참을 수 없이 웃기지만 그 웃음 뒤에 저절로 이런저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무대, 남산의 3월을 여는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사람들
맨손으로 소뿔을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간다는 베일에 싸인 인물.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바로 이 인물을 찾아가는 내용의 극중극과 그 극중극을 공연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면 한우의 뿔만 자르고 도망간다는 극중 설정이나 이에 대응하는 정권의 모습 등이 한미 FTA와 한우파동 사태 등 사회 정치적 현상을 이야기하는 듯하나, 사실 소뿔 사건은 작품의 표면적인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의 존재와 극중극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공연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실체 없는 이름과 이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실제로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란 존재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또 한순간 열광하는 시민들, 대본상의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배우 강신도를 죽인 범인을 찾겠다는 수사관의 소동, 아무도 만나본 적 없는 나진팔을 무대 위에 소환하려 하는 극중극의 제작자들 등,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 떠도는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들이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실체 없는 허상을 좇아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며 작품의 동시대적 시선을 느끼게 한다.
극중극으로는 약하다, 세 번 이상 놀라는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구조적으로도 지금껏 본 적 없는 기발한 연극적 놀이를 펼친다. 현실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모두 연극이고, 연극인 줄 알았던 것이 현실이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임. 거울 속의 거울처럼 무한히 증식되는 연극과 현실의 대결은 결국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만들며 그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이러한 ‘극중극중극’이라는 3중의 액자구조는 연극과 현실, 실제와 허상,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실체인가?”라는 작품의 의미를 형식적으로 확장시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이다.
극중 주인공인 황백호만이 유일하게 극중극과 극, 그리고 현실을 넘나드는 인물로서 그는 연극으로 현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황백호는 무대 위의 나진팔을 쓰러트림으로써 현실의 소뿔선생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분투를 펼치지만, 결국 무대 위에 있는 건 실체 없는 허상뿐이란 사실을 깨닫고 객석을 가로질러 극장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그가 나간 곳이 과연 진짜 현실인지는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 막이 내리고 극장 불이 꺼진 뒤에도 반전은 계속된다.
A급 스태프들이 만들어내는 B급 정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에서는 노골적으로 유치함과 대중성을 지향하는 B급 정서를 만날 수 있다. 단, 여기서 한 가지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B급 정서로 무장한 것이 이 작품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 아닌, 작품의 극중극인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라는 점이다. 극중극 <소뿔>은 유치찬란한 음악과 촌스러운 빵빠레, 만화 같은 캐릭터, 과장된 액션 등 모든 장치를 총동원한 B급 정서의 결정판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B급 정서에 기댄 이 작품은, 필터로 정제되지 않은 걸쭉한 대사와 액션을 통해 현실과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와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장치로 사용한다.
한편 극중극은 B급 정서를 노골적으로 과시하지만,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의 창작진과 출연진은 그야말로 특A급의 쟁쟁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일단 동시대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최치언과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대표 김승철 연출의 첫 만남만으로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독특한 연극적 놀이 속에 담아온 최치언 작가의 날렵한 필력과 고전의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를 이어온 김승철 연출의 단단한 뚝심이 무대 위에서 제대로 만나게 된 것.
여기에 박완규, 김수현, 신현종 등 노련한 중견배우들을 비롯해 창작공동체 아르케와 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배우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바탕 정신없는 난장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그간 묵직한 작품들에서 심각하고 진지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박완규와 김수현 배우가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의 주 무대는 사각의 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들은 이 링 위에서 싸우고 때리고 쫓고 쫓기고 도망 다닌다. 사각의 링은 극중 배우들의 무협액션이 펼쳐지는 실제의 장이자 연극과 현실, 실체와 허상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무대 한 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들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4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생생한 활기와 에너지를 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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