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력시장이 두 가지 거대한 변화를 동시에 맞고 있다. 삼성전기, LG화학, 한화솔루션, SK인천석유화학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전력직접구매제도(PPA)에 뛰어드는 한편,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폭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이 두 흐름이 맞물리며 산업계와 전력당국 모두 ‘이중 전환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10월 이후 전력직구를 신청한 대기업 사업장은 11곳. 올해 들어서만 SK인천석유화학, 한화솔루션 여수·울산 사업장, KCC글라스, LG화학 적량 사업장이 추가로 이름을 올렸다. 전력직구제도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와 직접 전력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수전설비 용량 3만㎸A 이상 대규모 사업장만 신청할 수 있다.
배경에는 산업용 전기료 폭등이 있다. 2022년 이후 산업용 전기료는 70%나 올라,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료 인상률(37%)의 두 배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한전 전력 판매 수입의 55%를 산업용이 차지하고 있어, 대기업 이탈은 한전 재무구조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8년 29.2%로 확대된다. 이를 위해 설비용량을 30GW에서 121.9GW로 4배 늘려야 한다.
문제는 전환 비용이다. 해상풍력 1GW 단지 건설에 6~7조원이 소요되고, 2030년까지 목표한 14GW 해상풍력 설비 도입에는 약 100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태양광 단가는 kWh당 200원대, 해상풍력은 400원대로, 한전 평균 전력 구입단가(134.8원)보다 높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등 일부 주에서 전력 소매 자유화와 기업 장기 PPA를 활성화했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와 직접 계약해 ‘RE100’을 달성하고, 전력 단가 변동 리스크를 줄였다.
유럽에서는 독일·덴마크·네덜란드 등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전력시장 개방을 병행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부과금(EEG)을 통해 초기 투자를 지원했고, 기업들은 전력직구나 자가발전으로 비용 상승을 완화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전력 도매·소매 시장의 단계적 자유화 ▲기업·발전사 간 장기 PPA 확산 ▲재생에너지 전환 비용의 공정한 분담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한 총 전력 수요 절감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전환과 산업용 전기료 안정화는 상충되는 목표처럼 보이지만, 시장 자유화와 장기계약 모델을 통해 상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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