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가격 안정을 명분으로 통과된 양곡관리법이 본격 시행도 전에 사실상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벼 재배 면적 감축을 전제로 추진된 전략작물 사업(밀·논콩·가루쌀)의 실적이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된 작물 상당수가 창고에 쌓여 팔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천호 국회의원(국민의힘·경남 사천·남해·하동)이 농식품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략작물을 총 18만t 매입했지만, 이 가운데 75.5%(13만6000t)가 재고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수매·직불금 등으로 들어간 예산은 3981억원, 별도로 집행된 보관료만도 3년간 211억원에 달한다.
정부 수매량이 가장 많은 논콩은 수입콩이 ㎏당 1700원에 도입돼 1400원대에 판매되는 적자 구조임에도, 국산은 3배 이상 비싸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최근 3년간 매입한 10만t 중 66%(6만6000t)가 재고로 남았고, 매년 500억원 이상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 적자를 불러오는 것으로 집계됐다.
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10만t 생산 목표였으나 실제로는 3만7000t 생산에 그쳤다. 정부가 3년간 매입한 5만3000t 중 98%에 달하는 5만2000t이 창고 신세다. 가루쌀 역시 목표 생산량(4만7000t)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수매량 2만7000t 가운데 1만8000t이 그대로 쌓여 있다.
양곡관리법 핵심인 벼 재배면적 감축도 부진하다. 정부가 제시한 8만㏊ 감축 목표의 이행률은 57.3%에 불과했다. 특히 ‘농민 자율감축’은 3만4571㏊ 목표 중 실제 이행은 24.5%(8461㏊)에 그쳤다. 강제 감축 정책에 대한 농민 반발은 여전한 상황이다.
서천호 의원은 “양곡관리법은 쌀 가격 안정을 위해 벼 생산을 줄이자는 취지인데, 현실은 혈세로 매입한 작물이 경쟁력을 잃고 창고에 방치돼 있다”며 “감축 이행률마저 저조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략작물에 세금 감면과 할인 지원 등 실질적 경쟁력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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