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파인: 촌뜨기들〉은 전남 신안 앞바다 난파선 보물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욕망을 코믹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은 2018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돈스코이호 보물선 사기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당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에 수십조원대 금괴가 실려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기업과 언론,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휩쓸렸다. 피해 규모는 특정되지 않았지만, 다수의 투자자가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이면서 피의자였던 사람들
돈스코이호 사건은 단순한 투자 피해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였던 최용석 전 신일그룹 회장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피의자가 된 사례다. 그는 당시 신일그룹을 인수해 인양 사업에 나섰다가 코인 사기와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돼 5년에 걸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1심·2심·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긴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며 명예와 신뢰, 경제적·정신적 손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손실과는 다른 차원의 피해였다. 돈스코이호 사건은 투자 피해와 사법 피해가 동시에 발생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복합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1999),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2000) 등에서도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억울한 피해자가 속출했고, 뒤늦게 무죄가 밝혀졌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진실은 밝혀졌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제도적 미비와 무리한 기소는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겨온 것이다.
최근 다시 과열되는 가상화폐 시장 역시 우려를 낳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와 급등세가 맞물릴 경우, 언제든 제2의 돈스코이호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보물선 신화’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새 정부 들어 검찰 개혁과 수사권 조정이 제도화되면서, 무리한 기소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피해를 본 이들의 상처는 단순한 제도 개선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명예와 시간, 그리고 정신적 고통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억울한 피해자를 사전에 막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미 피해를 입은 이들을 회복시키는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 검찰 개혁이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의 코인 광풍 속에서 한국 사회가 새겨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검증되지 않은 약속과 환상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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